[태국 워크어웨이] 구글 맵에도 없는 절에서 보내는 4주간의 나와의 여행 - 11일째, 2025년 5월 26일.
[태국 워크어웨이]
구글 맵에도 없는 절에서 보내는 4주간의 나와의 여행
11일째, 2025년 5월 26일

저녁 명상을 마치고 들어오자마자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우기의 시작이라, 날씨가 예측할 수 없이 왔다갔다하지만 절이 있는 지역은 산 속에 있어서 그런지 도시처럼 아주 덥거나 습한 날씨는 아니라 다행이다. 저녁에 얇은 담요를 덥고, 선풍기를 낮게 틀어두면 편안한 정도의 날씨이고 오후 해가 쨍쨍할때도, 선풍기를 틀어두면 견딜만할 날씨.
여기에서 평소보다 과일도 많이먹고, 야채도 많이먹고, 여행을 시작하면서 술고래처럼 마시던 술도 거-의 금주수준으로 끊고 걷기도 많이 걷고 물도 많이 마시는데 왜 면역력은 약해지는 걸까…? 역시 20대때의 체력은 이기지 못한다는 답을 알고있지만, 절에서 나가면 더 열심히 체력과 면역력 관리를 해야겠다. 오래오래 지금처럼 놀아야지!
오늘은 부처님의 날.
드디어 부처님의 날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알아냈다 - 챗지피티!
태국 달력에서 부처님의 날은 완프라(วันพระ)라고 하며, 한 달에 네 번, 음력의 달의 움직임에 따라 찾아온다. 이 날들은 태국 불교 신자들이 절에 가서 공덕을 쌓고, 명상하며, 계율을 지키는 중요한 날이다.
한 달 동안의 네 번의 완프라는 다음과 같다:
1. 삭일 - 어두운 달이 지난 다음 첫째 날이다.
2. 상현(반달) - 달이 차오르는 중 8번째 날 또는 달이 기우는 중 8번째 날이다.
3. 보름(만월) - 달이 가장 둥근 음력 15일이다.
4. 하현(반달) - 달이 기우는 음력 15일 또는 어떤 달에는 다시 음력 8일이 될 수 있다.
이 날들은 태양력을 따르는 서양 달력과는 다르게,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한 음력을 따르기 때문에 매달 날짜가 달라진다. 태국 달력에서는 이 날들을 작은 달 아이콘들(보름달, 반달, 초승달 등)로 표시한다.
새벽 4시 알람과 함께 정말 떠지지 않는 눈을 꿈뻑대며 아침 찬팅 및 명상을 갈 준비를 했다. 법당에 도착하니, 피곤한 건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오늘은 루앙 매의 지도하에 아침 찬팅을 했는데, 루앙 매가 영어로 발음이 쓰여진 찬팅 책을 따라가지않아 팀과 서로 마주보며 으잉…?하며 따라가기 힘든 부분은 있었지만, 고요한 산 속 절에서 들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평화로운 찬팅을 듣고 있으니 오히려 잠이 서서히 깨기시작했다. 아침 명상에서는 분명 고요함 속에서 진중하게 명상을 했던 것 같은데… 나중에 팀이, 나를 봤을 때 내 고개가 계속 앞뒤로 흔들거렸다고 한다. ㅎㅎㅎ
오늘 역시, 사라는 비파사나/침묵 명상 중이라 남아서 절 청소를 하고 나는 공양을 받으러 승려님들과 시내로 향했다. 부처님의 날인데다가 월요일이라 오늘 시내는 새벽 5시 45분부터 북적대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보다 많은 공양을 받아 양 어깨 가득 가방을 매고 시내를 돌아다닌 후, 다시 승려님들과 밴에 앉아 부처님의 날에만 공양하시는 나이드셔서 시내로 나오기 힘드신 분들의 집 근처에서 공양을 받고 다시 절로 돌아왔다.
음식을 정리하고 팀과 사라와 함께 자원봉사자들의 새로운 루틴인 절 입구 초입의 낙엽과 떨어진 나뭇가지 정리를 아침먹는 시간까지 했다. 아무리 빗자루로 쓸어보아도 낸 핏차의 빗자루질만큼은 아직 파워가 부족한 것 같다. 부처님의 날이라 오늘도 이웃분들이 오셔서 함께 명상기도를 하고, 평소보다 늦은 아침을 먹고 바쁜 스케줄로 - 조금은 급하게 정리를 끝냈다.
월요일은 부처님의 날이 아니라도 바쁜 날인데 오늘은 부처님의 날이라 걷기 명상이 30분 늦춰져, 걷기 명상을 10시부터 하고 끝나자마자 10시 반에 그룹활동을 해야했다. 최근 날씨가 습해져서 그런지 모기가 너-무 많아서 걷기 명상을 하며 집중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걷기 명상보다 앉아서 명상하는 게 집중이 훨씬 잘 되지만, 진정한 Mindfulness를 위해서라면 걸을 때도, 일을 할 때도, 바쁜 교통 속에서도 명상을 잠시라도 할 수 있어야하니… 남은 기간동안 이를 더 배우고 느끼고 싶다.
걷기명상이 끝나고, 사라는 비파사나/침묵 명상으로 그룹활동에 참가하지 않고 나와 팀, 낸 핏차와 다른 승려님들이 모두 우리를 도와 법당 근처 낙엽 및 나뭇가지 정리 및 잡초를 정리하는 일을 했다. 쉽지는 않은 일이었지만 무거운 걸 들고 옮기는 걸 가장 힘들어하는 나에게는 이 일이 오히려 편했다. 그룹 활동을 마치고 방으로 와서 무거워진 머리를 조금 가볍게 하려고 층을 대충 내고 (혼자 머리자른지 몇 년이 된 것 같다… 완벽에서 아주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길이가 길어서 층 정도는, 망해도 대충 봐줄만 하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뻗어 다마 토크가 있을 2시반까지 잠시 짧은 낮잠을 잤다.
오늘의 다마 토크 주제는, 마음, 자아, 그리고 오온
* 루앙 매라고 하니 뭔가 반말을 하는 느낌인데, ”루앙 Luang”이라는 단어는 태국 불교에서 고승이나 존경받는 스님들, 영적 지도자들에게 붙이는 존칭으로 보통 “Venerable(존귀한, 존경받는)” 정도로 번역되, 이미 승려님이라 붙이지않아도 그 자체로 존댓말을 쓰는 표현이다. *
사라도 함께하고 팀, 다른 승려님들과 함께한 다마 토크. 오늘 다마 토크 시간에는 루앙 매가 마음과 자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셨다. 자원봉사자 셋이 돌아가면서 대답했는데, 나부터 말하고, 그다음 팀, 그리고 사라 순이었다.
나는 마음과 자아는 가까우면서도 멀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내 입장에서 봤을 때, 자아는 뇌와 몸에 더 가깝고, 마음은 가슴 쪽 - 즉, 감정에 더 가까운 것 같다고 했다. 때때로 내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과 내 마음에서 느끼는 감정이 서로 싸우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즉, 이성적인 생각과 내 마음이 원하는 것 사이의 충돌이다. 이 둘은 항상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고 믿는데, 그걸 제대로 설명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루앙 매는 자아는 이성적이고 마음은 비이성적인 거냐고 물으셔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런 얘기를 누군가한테 처음 해본 거라, 말하면서 좀 부끄럽기도 했고, 나 자신을 잘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셋 모두 우리의 생각을 말하고 나서 (사실 다들 좀 헷갈려 했다), 루앙 매는 불교에서 마음과 자아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알려주셨다. 우리 생각을 더 잘 풀어낼 수 있도록 부드럽게 접근하시면서, 다섯 가지 개념으로 정리를 해주셨다. 그것은 바로 지각, 의식, 생각, 감정, 그리고 몸(물질)이었다. 이 다섯 가지가 자아를 이루는 오온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고정된 자아’는 없다고 하셨다. 나도 그 개념 “무아”는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 조금 더 와닿게 되었다.
또 불교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 감각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오감과 ‘마음’을 포함해서 여섯 가지인데, 마음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걸 해석한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 닭 그림을 볼 때, 눈은 그냥 선들을 볼 뿐인데, 마음이 그걸 ‘닭’이라고 해석하는 거다.
그래서 루앙 매는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 해석의 과정에 속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마음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항상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우리는 늘 이 다섯 가지 오온을 관찰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질문을 하나 드렸다. 깊게 뿌리내린 감정 반응 패턴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루앙 매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다시 너 스스로가 증인이 되어야 한다. 실제 일어나는 걸 바라봐야 한다. 과거에 붙잡히지 마라. 슬픔이나 분노조차도 집착하지 말고, 그 감정이 일어나는 과정을 지켜봐라.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 안에서만 진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배우고, 스스로 깨달아서 얻는 지혜로만 이어질 수 있다고 하셨다. 책도 더 읽고, 불교에 대해 더 생각하고, 그게 내 안의 과정에 어떻게 변화를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라고 하셨다.
이번 담마 토크를 통해서, 내 안의 슬픔과 분노의 고리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지나갔다. 이제부터는 나에게 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물으셨던 그 질문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너는 과거에 살고 싶니?”
다마 토크가 끝난 후, 팀과 저녁을 먹으며 오늘 느낀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방에 돌아와 저녁 명상을 하기 전 위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했다. 루앙 매의 말처럼 나는 과거에 머물며 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괴롭히고 있던 건 아닐까? 사실 “변화”해야하는 건 내 생각이고 그 내 생각 자체가 나인데.
이 생각은 꼬리를 물어, 저녁 명상때에도 나는 루앙 매가 오늘 우리에게 준 가르침에 대해 생각했다. 오래된 상처에 머물고, 그 상처가 반복될 거라고만 생각했던 나 자신이 조금은 바보같았고 사실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모두가 상처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위한 길에 서있는데 내 스스로가 주저하고있던 것 같았다. 내 마음을 열고,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이되 과거의 상처를 스스로 후벼파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음 속으로 스스로와 이야기를 하고, 오늘 다마 토크를 정리하다 보니 찬팅과 명상의 한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있었다.
루앙 매의 말처럼, 모두가 “Calmness”를 찾는다. 그렇지만 그는 Mindfulness 없이 올 수 없는 것… 오늘 저녁 명상때 내가 느낀 것을 기억하며, 앞으로 남은 날들도 아니 내가 살아갈 매일을 감사하며 (최대한) 현재를 사랑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