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살이 11년차, 이제 동남아 배낭여행을 간다.
2014년 봄, 대학 졸업을 한 이후 방황하던 20대의 나는 아무런 계획도 검색도 해보지 않고 가장 워홀 비자를 받기가 쉽던 나라 호주로 비자신청을 한 후, 비자를 받자마자 가장 빠른 티켓을 끊어 호주 브리즈번으로 떠났다.
그 이후 브리즈번에서 사는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카페 설거지 보조, 바리스타, 매니저, 영어 및 수학 튜터, 오피스에서 잡무 담당, 조경사 등등 해보고싶었던 일들도 다 해보고, 해보고싶던 공부인 식물 및 사회복지 관련 자격증도 따고, 한국 여권이 호주 여권으로 변하는 일도 생겼다. 말하지 못할 또 말해야 풀어지는 그런 산전수전도 정말 많이 겪었다.
노인복지 직종에서 일하며 운 좋게 좋은 상사를 만나 지난 2.5년간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브리즈번에서의 삶은 겉보기에는 평온하게 흘러가는 듯 했지만 사실 그 속에서 나는 브리즈번을 그리고 안정된 직장과 생활을 떠나 가방을 둘러매고 세상을 더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 결심이 점점 굳어지고 있었고 파트너 팀과도 오래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다.

대학생 시절 어학연수로 아일랜드에서 살며 근처 유럽 나라로 작은 분홍색 배낭을 매고 혼자 훌쩍 떠나 만난 사람들과 본 풍경들은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혀지지 않을 풍경이고 나는 그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고 많은 걸 배웠다.
그렇기에 십 년이 넘게 지난 지금, 30대의 혼자가 아닌 둘인 나와 팀은 개인으로서 또 커플로서 어떤 걸 느끼고 배울 수 있을 지 궁금했다.
안주하는 게 가장 쉬운 결정이던 몇 달전, 나와 팀은 가지고 있던 모든 가구, 전자제품, 안정되고 비전있는 직장과 부모님들의 걱정을 뒤로 한 채 팀의 대학 졸업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기약없는 배낭여행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둘이 와인을 홀짝거리다가 브리즈번에서 가장 싼 해외 목적지인 발리로 가는 편도 비행기표를 12월 10일 출발로 예약했고 일주일 이후 팀 가족 결혼식을 위해 뉴질랜드로 다녀온 후, 직장에 4주 노티스를 내고 천천히 여행준비 및 모든 가지고있던 살림살이를 팔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커뮤니티와 환경. 최소한의 비행기 이용과 최대한 육로를 사용하며 여행을 하고 중간 중간 기회가 있다면 커뮤니티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배우고 성장하고 재미있는 여행을 하고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10-14일까지의 숙소만 대충 예약한 채 나머지는 되는대로! 에 맡기기로 했다.
내게는 사직서를 내고 최대한 좋게 모든 걸 마무리하고싶어 일로 바빴던 4주, 팀은 대학 졸업을 확정지은 이후 살림살이를 처분하는데 집중하고 팀 엄마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바빴다. 이 4주간은 일하고 짐싸고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팔고 기부하느라 둘 다 정신이 없어서 설렐 틈도 없었다..
11월 22일, 일을 마무리하고 팀 아빠가 사는 리즈모어 Lismore에서 약 1주일을 보냈고 약 3-4일간 친구들과 파티도 하고, 큰 방에서 박스 2개로 줄어든 우리의 짐을 팀 엄마가 사는 브라이비 섬, Bribie Island에 잠시 맡겼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았던, 다들 사지 말라고 말렸지만 결국 3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 곁을 한 번도 고장안나고 지켜준 내 중고차, 2010 포드 피에스타 열쇠를 새 주인에게 건내던 순간 여행이 코앞에 다가왔음이 느껴졌다.
첫 목적지는 작년에 갔었던 인도네시아, 약 4주를 보낼 예정인데 좋은일만 생길 순 없겠지? 많이 배우고 많이 느끼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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