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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워크어웨이] 구글 맵에도 없는 절에서 보내는 3주간의 나와의 여행 - 3일째, 2025년 5월 18일.

발렌타인의 배낭여행기 2025. 5. 18. 22:38
태국 워크어웨이
구글 맵에도 없는 절에서 보내는 3주간의 나와의 여행
3일째, 2025년 5월 18일

어제 밤, 엄청난 양의 비가 새벽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내렸다. 법당에 잠시 갔다오는 사이 진흙으로 엉망이 되어 샤워를 하고 평화롭게 책을 읽으려고 앉았는데 바깥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서 그런지 혹은 모기장에 있는 구멍 때문인지 정말 수십마리의 벌레가 날아들어왔다. 벌레들을 모두 내쫓을 수는 없는 것, 그래서 문을 제대로 닫고 더 이상의 벌레만 들어오지 못하게 입구에 선풍기를 가장 세게 틀어놓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현재 읽고있는 책들. 짜뚜짝 세컨 마켓에서 산 책 헬프는 만질 때마다 커버가 떨어진다. 복사본이 분명하지만, 내용은 여전히 아름답다.

이제 태국, 라오스, 베트남, 필리핀 지역 우기의 시작일 뿐인데 - 매일 오후나 저녁마다 이렇게 엄청난 비와 그와 함께 따르는 모기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앞이 조금 막막하기도 했다. ㅎㅎㅎ

오후 10시에 적어도 6시간의 잠을 자야한다고 스스로에게 되내이며 침대에 누웠는데, 호주에서의 생활로 벌레 및 야생의 소리에 단련되어있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난생 처음 들어보는 정말 크고 다양한 벌레, 개구리 그리고 짐승의 소리에 그렇게 쉽게 잠들지는 못했다.

심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에 종 소리가 방까지 오지 않아서, 알람으로 일어난 오늘의 아침. 일요일은 사실 “쉬는 날”이지만 이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지내는 동안은 무조건 새벽 명상과 저녁 명상에 참여해야 한다. 또한, 아침 공양을 받으러 가고 공양을 차리는 일 아침 봉사를 해야하므로 사실 오전 및 오후 쉬는 날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비파사나 명상 센터나 템플스테이에 비해 아주 저렴하게 절에서 승려님들과 바로 옆에서 배울 수 있으니, 이 쯤은 아주 당연한거라 여겨진다. 어제보다 조금 무거운 눈으로 옷을 갈아입고, 이를 닦고, 얼굴을 씻고 법당으로 명상을 하러 향했다. 여전히 법당으로 가는 길은 조금 젖어있었지만 어제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법당에는 이미 명상을 시작한 승려님들이 계셨다. 나는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팀과 같이 들어가, 자리에 앉아 부처님께 세 번의 절을 한 후 눈을 감았다.

한국에서도 엄마를 따라 절에 몇 번 가보았고 불교 관련 책 및 스님들의 강의를 들어봤어서 불교에 대해 나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곳은 나의 예상과는 달랐다. 전통적으로 마하야나 전통, 그리고 조계종 및 다른 분파를 따르는 우리나라에 비해 태국의 불교, 특히 비파사나 명상을 수련으로 삼는 이 절에서의 생활 습관/절에 대한 예의 등은 많이 다르지만 아이한테 하듯이 가르쳐주는 대신, 우리가 승려님을 보며 배워야한다. 어제 도서관에서 집어든 책의 첫 다마 토크를 읽은 뒤 배운 것은 - 명상을 하기 전에 세번의 절을 할 것, 그리고 명상을 잘 하는 법이었다.

배운 대로 절을 세 번 하고,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실때에는 “Bud” 숨을 내쉴 때에는 ”Dho”라고 내 속에 이야기하며 “Bud-dho”를 반복했다. 여전히 시끄러운 법당 옆의 개구리들이 내 마음을 어지럽힐 때에는 그 개구리소리에 의식적으로 집중하고 - 눈이 건조해서 눈을 떠야할 때에는, 눈을 뜨고 내 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끝난 어제보다 내 마음을 많이 안정시켜준 40분의 명상 이후, 어제와 같이 절을 청소하려 하는데, 한 승려님이 오늘 나는 공양을 받으러 따라가실 거라고 말씀해주셔서 공양을 받으러 가는 승려님 5분들과 운전을 맡은 팀, 그리고 자원봉사자인 사라를 따라 나섰다. 밴의 운전석 뒤로 승려님들이 먼저 앉으시고 나와 사라가 맨 뒤에 앉았다.

승려님들은 공양을 받으실 큰 은으로 된 공양 보울을 가지고 계셨고 사라는 내게 승려님들의 복장과 같은 색인 주황색의 가방들을 나누어주었다. 내가 해야하는 일은 승려님들의 뒤에서 걷다가, 음식 공양을 받으시면 그걸 주 승려님께 전달받아 가방에 넣는 것. 그리고 공양을 해주신 신자님들께 감사인사를 승려님들과 함께 전하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에서나 다른 곳에서 절 음식을 먹을 때는 무조건 채식이었는데, 이 곳에서는 채식이 아닌 주어지는 음식을 그대로 받으시는 것이었다.

시장에서는 많은 공양을 받기 때문에 조금 급하게 걸어서 주 승려님이 음식을 들고 걸어다니시지 않도록 해야했다. 공양을 보는 것이 정말 아름다웠는데, 쌀 밥은 공양 보울에 신자님들이 한 승려님 당 한 주걱씩 퍼주는 것이 인상깊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신자님은,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기다리고 있던 가족 - 열 살 정도 되보이는 손자가 밥을 공양하는 첫 날인지, 아버지가 옆에 붙어 도와주는 모습과 공양을 마친 후 승려님들이 가족을 위해 찬팅을 할 때 무릎을 꿇고 듣는 신자님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절에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공양음식을 나누어담고 과일을 썰고, 승려님들이 아침을 다 드시는 걸 기다린 이후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싸서 냉장고에 넣었다. 망고를 써는 중에, 한 승려님이 궁금한 게 있냐고 여쭈어보셨는데 망고 써는 데에 집중해서 차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은으로 된 공양 보울의 의미는 무엇인지, 공양의 의미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다.

오늘은 루앙 매의 여동생이 바나나케잌을 만들어주셨는데 디저트로 먹을 생각에 행복하다. ㅎㅎㅎ


그리고 저녁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 어제 했던 빨래들이 빗바람에 다 더러워졌고 어제 입은 옷들도 더러워져, 다시 옷들을 빨고 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책 “헬프”를 읽으려 했지만 어제밤 잠을 설쳐서 그런지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10분만… 하고 침대에 11시 경 누웠는데 일어나보니 어느덧 오후 1시반이었다. 다시 얼굴을 씻고 잠을 얼굴에서 지웠다.

오늘도 역시, 오후 3시반쯤 가서 점심 겸 저녁을 절 1층에서 혼자 먹고 정리한 후 방에서 책을 읽고, 최근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 일이 생겨 그 생각에 빠져있다가 저녁을 먹는다는 팀의 메시지에 팀과 5시반쯤 절 1층에서 만나서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팀은 정말 낮잠을 잘 자지않는 편인데 역시 피곤했는지 11시반부터 4시반까지 다섯시간이나 잤다고 한다… ㅎㅎㅎ

그리고 서로 각자 불교와 다마에 대해 배운 것을 공유하고, 이렇게 서로 생각과 시간을 공유하지만 서로를 만지는 것을 못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6시쯤 저녁 명상 및 찬팅을 하러 법당으로 향했다.

대충 그려본 절의 지도. 법당에서 명상을 행하고 원하는 아무 때나 가서 명상을 할 수 있다. 절 1층은 공용 화장실 / 부엌 / 먹는 곳 및 쉬는 곳이 있고, 2층이 절이라고 보면 된다.

내게는 첫번째 저녁 명상 및 찬팅. 6시 반부터 7시까지는 승려님들이 찬팅을 (태국어로) 하셨고, 7시부터는 30분간 불을 끄고 어둠속에서 명상을 했다. 여전히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많은 생각들, 그렇지만 아침과 같이 Bud-Doh만을 생각하고 한 생각에 집중하려 노력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찬팅은 그 소리에 집중하면 되는데 명상은 정말 ”나와의“ 온전한 시간이기에 더 힘든 것 같다. 그리고 아빠다리를 한시간동안 하고있으려니 다리가 저렸다… 승려님들은 다리가 안 저리신가?


명상을 마치고 팀과 함께 부엌으로 가 남은 식기들을 제자리로 돌려두고, 한 승려님께서 내일은 특별한 “부처의 날”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부처의 날은 캘린더에 따라 정해진다고 하는데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어떤 것이 부처의 날인지 여쭈어봐야겠다.

내일은 새벽 5시 대신 4시반에 찬팅을 시작하고, 외부인이 절에 들어와 아침을 같이 먹기도 한다고 한다. 내일은 원래 스케줄 대로라면 걷기 명상 + 정원 관리나 청소 등의 프로젝트 + 루앙 매와의 다마 대화가 있는 날인데, 부처의 날로 인해 이런 스케줄이 변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명상을 나가기 전, 문을 꽉 닫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처음 한 일이 불을 켜는 게 아닌 벌레가 들어오지않게 문을 꽉 닫는 나는 절 생활에 아주 조금은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다. 이 곳에서 지내는 첫 부처의 날 내일. 내일도 다가오는 변화하는 순간을 받아들이며 늘 감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