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워크어웨이]
구글 맵에도 없는 절에서 보내는 4주간의 나와의 여행
15일째, 2025년 5월 30일
어느덧 절에 오게된 지도 15일째. 6월 7일까지이던 우리의 워크어웨이를 일주일 연장해, 이제 딱 절반의 시간이 지났다.
나 자신에게 전혀 엄격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지내는 스타일의 나는, 15일이 지나 절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혼자의 시간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딱히 명상이나 불교에 대한 공부에 큰 진전이 없더라도 홀로 보내는 순간들은 모두 즐겁게 보내고 있다. 그에 비해 스스로에게 나보다 엄격한 팀은, 지난 며칠간 명상과 공부에 진전이 없어서 이 “머물러”있는 느낌을 받아들이는 데에 힘들어하는 것 같다. 여행을 오기 전 두번째 대학의 학위를 마쳐서 그 대학 때의 압박이 남아있어서 그런걸까 아니면 성향이 다른 걸까? 이것 역시, 커플로 같이 배낭여행을 하는 순간이지만 서로의 다름을 느끼고 특히나 이 절에서는 스스로가 풀어야할 문제인 것 같다. 팀 힘내
오늘은 아이폰의 끔찍한 알람이 울리기 전 둔탁한 종소리에 잠이 깼다. 어제밤 모기와 하루살이 및 벌레들과 함께자는 것을 선택한 나는, 오늘은 꼭 밤에 팀에게 모기향을 달라고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일어나 습관적으로 얼굴을 씻고, 이를 닦고, 불교예절에 맞는 어깨와 무릎을 가리는 옷을 입고, 콘택트렌즈를 끼고 손전등과 함께 아직은 어두운 새벽, 아침명상을 위해 법당으로 향했다. 어제 승려님이 아침명상 관련 해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방석에 편하게 앉아 아침 내 몸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아침에 내 머리속에 처음 드는 생각은 어떤지 알아보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내 머리속에 처음 든 생각은… 지금 앉아서 잘까? ㅎㅎㅎ 웃기게도 이 생각을 관찰하게되고 나서는 오히려 스스로를 더 돌아보게 되어 아침명상동안 내 생각을 잘 관찰하고, 돌아보며 잘 끝내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팀과 승려님들과 함께 아침공양을 받으러 나가는 날. 승려님들이 걸어다니시는데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몰라, 한 번도 휴대폰을 들고 아침공양을 받으러 나간 적이 없는데 오늘 낸 에이프릴이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왔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당연하다고 말씀해주시며, 앞으로 혹시 사진을 찍다가 그 중 자기가 나온 사진은 자기에게도 보내주면 가족들에게도 보내주고싶다고 하셨다! 알려주셨음에 감사를 표하고, 이미 2주의 시간이 지나가긴 했지만 남은 2주간은 휴대폰을 이래저래 들고 나가며 절에서의 생활에 대한 사진도 찍어봐야겠다. 신세대 승려님들이라는 걸 잊고있었다!
지금 반라이 시내에서는 오후/밤에 시장이 열려서 이를 위한 셋업이 되어있는데, 이는 여왕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하며 반라이 뿐만 아니라 모든 도시에 비슷한 행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이른 아침에는 문이 닫혀있었지만, 많은 푸드트럭과 마켓이 열려 오후에는 붐비게 될 것임을 가늠할 수 있었다. 태국 여행을 하다보면 태국왕의 사진이 정말 많은 곳에 걸려있는 것을 알수있고, 해외에서 어떻게 바라보던 태국내에서는 태국왕 및 왕실에 대해 나쁜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 듣기로는 그들의 왕실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닫힌 마켓 셋업도 지나, 오늘의 아침공양을 받고 절로 돌아와 공양을 정리했다. 어제 사라의 수다공격을 하루종일 받아서 그런지 오늘은 조금 조용히 내 마음의 소리를 더 듣고싶었는데, 사라는 마치 침묵 명상이 끝난 이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계속 수다를 떨어댔다… ㅎㅎㅎ 그래도 나는 묵묵히 할 일을 하고 대답을 적당히 해주는데, 나보다 몇백배는 친절한 팀은 옆에서 같이 맞장구를 쳐주느라 실시간으로 피로해져가고 있었다. ㅎㅎㅎ 수다를 피해, 공양을 정리하고 낸 핏차를 바로 따라가 나뭇잎과 밤새 빗바람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웠다. 원래 별로 좋아하지않는 일임에도 오히려 조용히 일을 하다보니 계속되는 대화를 이어가는 것보다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신기한 일이다.
태국에서도 한국처럼 죽순을 많이 먹는데, 특히 우리는 죽순을 넣은 국을 아주 많이 공양받는다. 오늘은 저녁으로 죽순을 가득 넣은 도시락을 싸고, 남은 음식을 싸고 설거지를 하며 뒷정리를 한 후, 9시반에 있을 걷기명상을 준비하기 위해 방으로 갔다.
방에서 약 15분정도 누워서 좀비처럼 휴식을 취하다가… 종소리와 함께 일어나 걷기명상을 하러 밖으로 나갔지만 모기가 너무 많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래도 되나?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집중을 위해 방으로 돌아와 방의 한쪽 끝부터 다른쪽 끝까지 그 다섯걸음 정도를 걸으며 남은 시간 걷기명상을 보냈는데 - 걸으며 방에 있는 내 물건들을 알아보기도 하고, 내가 어떻게 그 물건을 소지하게되었는지도 생각해보다보니… 30분이라는 걷기명상이 끝났다. 나중에 승려님께 여쭤보니, 방에서 해도 문제는 없다고 해주셨고 모기나 벌레로 계속해서 집중이 되지않는 바깥보다는 발코니 (?빨래너는 곳) 혹은 방이 나을 것 같아, 아마도 앞으로는 이런 방식을 선택할 것 같다.
그리고 낸 핏차와 함께하는 그룹활동 시간. 원래 금요일은 그룹활동이 하루의 끝이지만, 이번 학기는 학교에 목 & 금요일 아이들을 가르치러 간다. 낸 핏차가 자신도 나중에 학교에 같이 갈것이며, 오늘 그룹활동는 낸 핏차가 이미 모아둔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을 절 전체 부지에서 주워서 절 가장자리로 버리는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대체 아침부터, 밥도 먹고 걷기명상을 하는 것도 분명히 봤는데 어디서 이렇게 나뭇잎과 나무가지들을 다 쓸어놓은거지…? 라는 생각이 들며 낸 핏차는 정말 슈퍼승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 사라와 함께하니 겨우 45분에서 한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던 짧은 그룹활동을 마치고 푸른 하늘에 비가 오지 않을 것 같아, 미뤄둔 빨래를 손빨래하고 학교에 가기 전 잠시 낮잠을 잤다.
안타깝게도 낮잠에서 일어나보니 푸른 하늘은 온데간데없이 비가 오고있었다! 급히 옷들을 거둬 안으로 들이고, 오후 1시반, 팀과 사라와 승려님 2분 그리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룽과 함께 학교로 갈 준비를 했다.
오늘 우리가 가르쳐야할 학생들은 1학년 7명과 2학년 5명. 약 6-7세라고 하고 아직 어린 학생들이라 알파벳을 모르기 때문에 오늘은 알파벳을 가르치기로 했다. 어제 레슨을 하며 사라가 리드를 하고싶다는 걸 알 수 있었기에 팀과 함께 사라에게 오늘 나와 팀은 서포트를 하고, 사라가 리드를 하고싶냐고 물어보자 사라는 아주 좋아했다. A-Z까지 대문자만을 읽고, 쓰면서 아이들을 가르친 한시간! 물론 같은 학년이라고 해도… 분명 사교육을 받거나 집에서 공부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알파벳과 익숙한 아이들이 있는 반면 그에 비해 느리고 알파벳을 처음 써보는 듯한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내 마음은 조금은 느린 아이들에게 가게되어서 그 아이들 옆에 앉아서 읽어주고 생소한 알파벳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 도와주려는 노력을 했다. 그 중, 한 태국 아이가 아주 작고 귀여웠는데 생긴게 마치 한국에 있는 두 살도 안된 조카가 나중에 크면 생겼을 법한 얼굴이가 괜히 정이 갔다. 승려님들의 도움으로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 아이들이 순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며 몇번이나 인사를 해주는 걸 받으며 다시 절로 돌아왔다.
절에 와서 팀, 사라와 밥을 먹고 있는데, 작년에 워크어웨이를 통해 자원봉사를 한 낸 이레나가 우리에게 와서 학교는 어땠는지 물어보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낸 이레나는 작년에 아이들을 가르칠 때, 정말 잘하는 몇 명의 아이들을 보았다고 한다. 아마도 집에서도 공부할 환경이 될 것이고, 그 애들도 열정이 있어보여서 그 애들이게만 특별히 어려운 단어들도 추가로 알려주었다고 하고, 사라도 이에 공감했다.
나는 그 말도 물론 맞고, 잘하는 애들을 더 잘하게 해줘야한다는 게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오늘의 예를 들며, 모든 아이들이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을 때는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교사가 (임시던 장기던) 학생들을 동일한 선상에서 보고 같은 것을 알려주고, 늦은 학생은 한 번 더 가르치며 뒤쳐지는 학생이 있더라도 조금만 뒤쳐지도록. 아주 뒤쳐지지는 않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팀 역시 나와 동의하며, 학생들 중 특히나 주의산만한 아이들은 대체로 배우는 내용을 이해하지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 선생님들이 그 학생을 포기해버리면 학생은 갈 곳이 없기에 그런 학생들에게 더 관심을 주어야한다고 했다. 물론, 나와 팀 - 사라와 낸 이레나 모두 다른 환경에서 자라 생각이 다르고 우리중 그 누구도 전문교사가 아니지만, 이 짧은 영어레슨으로도 “교육”에 대한 관점이 갈리는 것을 보고 교육이란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이렇게 다들 강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말레이시아 이포에서 만난 패트릭이 며칠 전, 우리에게 보낸 와츠앱메시지가 생각났다. 말레이시아 정치인의 페이스북 포스트였는데, 이를 번역해보니 아래와 같았다.
정치인 몇몇과 지역 도지사같은 사람이 쿼리의 아이들을 방문했다는 것. 이들은 쿼리 아이들의 어머니께 몇 번이고 찾아가 쿼리가 얼마나 아이들의 교육과 건강에 좋지않은 곳인지를 읍소하며 여러 다른 옵션을 제시했으나, 쿼리 아이들의 어머니가 지금까지 이를 모두 거부했었다고 한다. 점차 아이들은 커가고 이제는 학교를 가야할 나이인데도 학교에 가지않자 정치인들과 도지사가 아이들이 사는 곳을 직접 보고 어머니와 대화하기위해 이 곳을 방문한 것이다. 전기도 깨끗한 물도 없는 이 곳과 아이들이 사는 환경을 보고 충격받은 이들는, 쿼리 아이들의 어머니에게 일주일 기한을 주고 일주일동안 쿼리 아이들의 어머니가 주어진 다른 옵션들에 동의하지않으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 아이들이 깨끗한 곳에서 교육을 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아마도 이들이 말하는 적절한 조치는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내는 것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고아원이라 하면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패트릭에 의하면 오랑 아슬리들의 아이들인 경우 오랑 아슬리(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지 않고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고아원에 가면 적어도 중고등 교육까지는 마칠 수 있어, 가난이 되물림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나도 이전에는 사라나 낸 이레나처럼… 잘하는 애들 더 잘하게 - 를 생각했던 적도 있는 것 같은데, 패트릭을 통해 쿼리 아이들을 만나고 오랑 아슬리들의 자녀를 만나며 교육의 존재와 그 평등함의 중요성 대해 느끼고 난 후 오늘과 같이 다르게 느낀 것 같다. 일주일 뒤에 다시 체크하겠지만 부디 쿼리 아이들의 미래와 건강에 최선이 되는 선택을 어머니가 하시기를…
방으로 다시 돌아와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다 저녁 찬팅 및 명상을 위해 법당으로 향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저녁 찬팅 시간! 신나게 찬팅을 하고, 명상시간동안 찌뿌둥한 몸을 느끼고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 팀에게 잘자라는 인사를 하고, 모기향을 받은 뒤 방으로 돌아왔다.

불교나 명상에 대한 것은 많이 배우지 못한 하루이지만, “침묵”의 중요성과 “필요한 대화”는 어떤 것일까 그리고 의미없는, 끝없는 대화만 하며 사는 날보다는 나 자신과 속으로 대화하는 게 아름답지않을까 하고 느낀 날이다. 이 역시, 어찌보면 스스로와 가까워지는 길이겠지? 사진은 무슬림 시인이자 지도자인 루미의 말. 어느 종교이던 침묵을 아름답게 여기는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내일은 조금 더 내면에 집중하고 나와 대화하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제발 ㅎㅎㅎ
오늘의 정보. 모기향은 세지만 태국의 벌레들은 더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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