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태국

[태국 워크어웨이] 구글 맵에도 없는 절에서 보내는 4주간의 나와의 여행 - 13일째, 2025년 5월 28일.

발렌타인의 배낭여행기 2025. 5. 28. 22:54
[태국 워크어웨이]
구글 맵에도 없는 절에서 보내는 4주간의 나와의 여행
13일째, 2025년 5월 28일

현재는 오후 8시 11분. 저녁 찬팅 및 명상을 마치고 찬 물에 (따뜻한 옵션은 없다!) 샤워를 하고 잘 준비를 마치고, 오늘을 정리할 일기를 쓰기위해 선풍기를 켜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발은 침대위에 올린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있다. 새벽 4시 반부터 일어나서 보낸 오늘 하루 유일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인 것 같다.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아침 명상을 하러가는 길, 평소보다는 조금 덜 졸렸고 명상을 하면서도 “Mindfulness”에 대한 목마름?이라고해야하나, 생각하면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이 명제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글로 번역은 마음수행, 그 말대로 마음을 수행하다보면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Mindfulness가 얻어지는 걸까? 아니면 내 마음이 방황하지 않고 한 곳에 있으면 그게 Mindfulness일까? 혹시 내가 하고 있는 것은 Concentration이 아닐까? 현재에만 집중해야한다면 내일과 미래에 대한 생각이나, 과거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등등의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은 이 개념이 내게는 잘 와닿지가않아 어려움과 복잡함, 그러면서도 그래도 현재는 현재에 집중하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면 되니까-라는 상충되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 명상을 마쳤다.

오늘은 사라의 비파사나/침묵명상의 마지막 날. 그 말은 곧 나 혹은 팀이 비파사나/침묵명상을 하게될 날이 다가온다는 점…! 우리는 아직 루앙 매에게 이야기를 들은 건 없지만, 아마도 둘 중 한명이 토요일쯤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대충의 예상을 하고있다. 이 곳에서 겨우 나 자신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을 익혔는데 이를 잃으면 나 자신과의 시간이 다시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싶으면서도, 일생의 한 번인 이 기회에 루앙 매의 지도하에서 비파사나/명상을 놓치고싶지는 않은 두가지의 감정이 들었다.
오늘 역시, 승려님들을 따라 공양음식을 받으러 가서 총총걸음으로 승려님들을 따라다녔다. 오늘 아침에는 다들 피곤한 지, 평소에는 북적대는 아침의 밴이 조용했다. 절로 돌아오는 길, 근처의 벼농사짓는 논밭과 산에 걸려져있는 구름들을 보며 평소에 내가 피곤해서 눈을 감느라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기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팀이 운전하다가 옆에 있는 구덩이에 밴 타이어가 빠질 뻔 해서, 그거때문에 조금 놀라서 잠이 안오는 덕분에 (?)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던 날이었다. ㅎㅎㅎ


절로 돌아와 공양음식을 정리하고, 오늘 아침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빗자루질은 하지않고 내게 필요한! 커피를 진하게 타서 한 잔 마시며 밀려오는 잠을 깨웠다. 평소보다 뭔가(?) 천천히 끝난 아침식사. 설거지를 다하고 나니 걷는 명상까지 약 30분 밖에 남지않아, 방으로 돌아와서 그룹활동을 하기 좋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선크림을 덧바르고 걷는 명상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저번 걷는 명상에서 집중하는데 조금 힘이 들었는데… 평소에는 늘 방 바로 바깥에만 있었는데, 오늘은 발이 따르는 대로 - 내가 걷기 편한 절 근처의 돌길로 발이 향했다. 그 곳에서 걸으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전기 고치는 아저씨, 다른 승려님들의 태국어 대화소리)에도 최대한 내 중심을 잡으려고 생각하고 스스로가 지루해지지 않도록 길을 조금 옮겨 걷기도 하다보니 오히려 주위의 아름다운 모습, 그리고 내가 어떻게 걷는지 나의 걸음걸이, 보폭, 걸을 때 내가 숨쉬는 방법 등을 생각하게 되어 30분이 빨리 지나갔다!

걷기명상 이후 팀과 낸 핏차, 그리고 낸 수티(인도네시아 승려님)과 함께하는 그룹활동 시간. 낸 수티는 사실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영어로 우리와 대화를 하며 영어를 배우고싶고 또 낸 핏차에게 절에 필요한 일들(가드닝, 홍수대비 등등)을 배우고 싶어서 자진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거라고 한다!

오늘 우리는, 절 오른쪽 청소부터 시작해서 내 방 건물 뒤쪽에 있는 오래된 물품 제거 - 그리고 홍수대비를 위해 승려님들이 파두신 구덩이?에 자갈들을 옮겨 채우는 일을 했다… 두시간동안 나도 땀을 흘렸지만, 절 전체에 유일한 남자라는 이유로 자갈로 꽉 찬 수레를 20번 넘게 옮긴 팀은 땀을 뻘뻘 흘렸다. 그룹 활동을 하면서 팀과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절대 집에 자갈길을 두지 않을 거라고… ㅎㅎㅎ


그룹 활동이 평소보다 길어져, 평소보다 늦게 마치고 땀을 씻어내려 샤워를 하고 잠시 앉아 쉬다보니 어느덧 낸 이레나에게 수타를 배우러 갈 2시반…! 평소에는 매일 이른 오후나 오전에 낮잠을 1-2시간씩 잘 시간이 있었는데, 낮잠이 없이 바로 수타를 배우러 가야하다니. 도착하자마자 커피를 한 잔 더 마셨다.

우리에게 수타를 알려주시는 낸 이레나는, 작년 워크어웨이로 이 절에서 두 달간 자원봉사를 한 뒤 이 곳으로 돌아와 귀의를 한 지 약 한 달이 지난 새내기 승려님이다. 낸 이레나는 태국인 어머니와 이탈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이탈리아에서 자라났지만 태국어도 어느정도 가능하고 자라나며 불교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막연히 자신이 후에 불교에 귀의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았고, 이 절에 오게된 이후 명상이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변화에 감동해 이 곳에서 귀의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다마토크, 수타를 몇백번은 해보셔서 이제는 시간에 맞춰서! 가르침을 주시는 루앙 매와는 달리 이레나는 새내기 승려님이시고 스스로 공부 및 가르침에 대한 열정이 크신 분이라 배우기에도 정말 좋지만, 그만큼 오늘 수타 레슨은 한시간 반이던 계획을 훌쩍 지나 2시간을 훌쩍 넘어가는 긴 레슨이었다. ㅎㅎㅎ

낮잠도 휴식도 없이, 새벽 4시반부터 바삐 지나온 탓, 그리고 많은 부분을 설명받느라 집중하기가 힘든 부분도 분명히 있었지만 최대한 큰 개념 위주로 받아적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받아적어, 나중에 레슨이 끝나고 밥을 먹고 정신을 차린 뒤 - 다시 정리를 해보았다.


오늘 수타 수업에서는 맛지마 니까야 1권 5장 4절에 해당하는 쭐라웻달라 수따(44경), '질문과 대답에 대한 짧은 경'을 함께 읽고 공부했다.

이번 경은 지난주에 공부한 것보다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배울 것이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경이었다. 이번 시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배웠다. 내용은 질문응답 수준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불교의 철학이 많았다.

먼저 오온에 대해 더 자세히 배웠다. 오온(Five aggregates)은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물질(Body), 느낌(Feeling), 지각(Perception), 의지적 형성(Mental Formation) 의식(Consciousness)이다.

의식(Consciousness)과 지각(Perception) 비슷해 보이지만, 지각은 의식을 인식하는 역할을 하고, 의식은 다섯 감각을 통해 마음과 연결되는 창구이다. 의지적 형성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고, 실제 결과로 이어지는 정신 작용이다. 쉽게 말해, 조직된 생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오온을 바탕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행동을 멈춰서 관찰할 수 있다.

이 다섯 가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를 이루지만, 각각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또 항상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매 순간이 새로운 나이고, 그 순간마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붓다의 관점에서 자아(Self) 어떻게 생겨나는지도 간단히 다뤘다. 오온은 고정된 것도 아니고, 우리 소유도 아니다. 그저 생기고 사라지는 흐름일 뿐이다.

팔정도에 대해서도 다시 복습했다.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정신 집중’에 초점을 맞췄다. 집중된 마음은 산만하지 않고, 고요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와 관련해서, 집중이 지대로 자리잡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사념처에 대해서도 배웠다. 이는 네 가지 마음챙김(Mindfulness)의 기초로, 몸에 대한 관찰, 느낌에 대한 관찰, 마음의 상태에 대한 관찰, 마음의 대상에 대한 관찰이다.

사정근, 즉 네 가지 바른 노력도 다뤘다.
1. 아직 생기지 않은 해로운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막는 것,
2. 이미 생긴 해로운 마음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
3. 아직 생기지 않은 좋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
4. 이미 생긴 좋은 마음을 더 깊고 넓게 키우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노력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돌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고 개인적으로 오늘 배운 것 중, 가장 와닿는 내용이었다.

또한 우리는 '느낌'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뤘다. 불교에서 말하는 느낌은 세 가지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그리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중간 느낌이다. 이 중에서 마지막 느낌은 자칫 무관심이나 무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지만, 차근차근 다시 수타를 읽으며 내용이 점점 이해되었고, 마음에 깊이 와닿는 부분도 많았다. 매 순간 나를 돌아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침을 얻을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수타가 끝나고, 밥을 먹고 정리를 하고나니 어느덧 5시 반! 다시 방으로 돌아와, 나중에 하지않아도 되도록 이부자리를 조금 정리하고 급히 하프스쿼트를 조금 하고 손전등을 가지고 다시 법당으로 향했다. 법당으로 향하는 길, 내 방(방이라고 부르지만 작은 건물이라 헛 느낌이다) 아래에 있는 고양이 세마리… 사라져가던 알러지가 다시 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고양이들이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이제는 문을 잘 닫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팀과 대화를 하다가 찬팅 구절 속에서 둘다 머리속에서 맴돈다고 하는 구절이 있었는데 리듬감이 있어 마치 노랫말같은 부분이다. 이 부분을 찬팅하며 팀과 서로 마주보고 학교에서 선생님 몰래 장난치는 아이들처럼 웃다가 찬팅 시간을 보냈다.

명상 시간, 낸 이레나가 알려준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를 또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고 나의 지혜로 만들까… 고민을 하다보니, 어느덧 명상시간이 끝났다. 오늘은 자세를 거의 안바꾸다시피 했는데, 다리가 아주 조금 저리긴 했음에도 일어나니 다리가 그닥 저리지 않았다.

아침부터 쉴틈없이 보낸 하루. 내일은 이 곳에서는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러 학교로 가는 날인데, 아이들의 그 해맑은 에너지를… 견뎌하지 못하는 나도 괜찮겠지…? ㅎㅎㅎ 내일 걱정은 내일, 내일 아침 준비를 확실히하면 괜찮을거라는 믿음으로 오늘은 푹 자야겠다. 이 곳에서의 시간이 끝날 때쯤에는 Mindfulness를 조금은 이해하기를 오늘도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