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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워크어웨이] 구글 맵에도 없는 절에서 보내는 4주간의 나와의 여행 - 12일째, 2025년 5월 27일.

발렌타인의 배낭여행기 2025. 5. 27. 22:12
태국 워크어웨이
구글 맵에도 없는 절에서 보내는 4주간의 나와의 여행
12일째, 2025년 5월 27일

어제 밤, 절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잠에 빠지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겨우 2-3시간 정도를 자고 새벽 4시반에 아침 명상을 위해 일어났다. 오히려 오래 안 자서 그런지 피곤하지도 않은 듯한 느낌?

어제 한 승려님이 명상을 할 때 건강에 방해되지 않는 조건 하에서 최대한 움직이지않고 한 자세로 있어보라고, 그러면 우리의 몸이 얼마나 정신의 영향을 받는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셔서 오늘 아침 명상 중 이를 행해보기로 했다. 명상을 하기 위해 법당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은 부처님께 세 번의 절을 올리는 것인데, 나는 고양이 알러지 반응으로 고생한 이후 손은 바닥에 대지 않고 뜬 상태로 절을 했다.

그리고 나서 명상을 위해 편안한 자세로 앉은 뒤, 다리가 저릴 때에도 최대한 그 자세에서 앞 뒤로 왔다갔다하며 자세를 바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총 두 번 정도 다리 저림이 왔는데, 처음에는 머리 속으로 이도 지나간다고 생각하고 다른 생각을 하며 명상을 하다보니 그 아픔이 사라졌지만 두번째에는 역시 시간이 지나며 집중이 풀어지다보니 정신이 육체를 편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해서, 다시 자세를 고쳐잡아야했다. 처음에 그 아픔이 사라진 것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평소에는 아침 명상 중 자세를 4-5번은 바로잡아야하는데 최대한 한 자세로 있자고 생각을 하다보니 2번밖에 자세를 바꾸고자하는 마음이 든 것 자체가 신기했다!

자세와 그 편안함보다는 명상 그 자체에 더 집중해서일까?


오늘은 화요일이라 아침 활동을 제외하고는 쉬는 날. 어제 그리고 내일 역시 바쁜 일정이 있을 것임을 알고있기에 중간에 쉬는 날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사라의 비파사나/침묵 명상으로 나는 승려님들과 공양을 하러 시내로 갔는데, 어제 밤 잠에 들지 못할 때에는 온 몸이 가렵기도 하고… 예전에 겪었지만 이제는 사라진 면역질환이 이래저래 다시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아서 이 상태라면 시내로 갈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다행히 아침에 컨디션이 훨씬 나아져서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 시내로 향했다.

어찌보면 실제로 대화 한 번 못나눠본 태국 분들이지만 공양을 받으며 눈인사를 주고받다보니, 이제는 그 분들의 얼굴과 패턴이 익숙해졌다. 공양을 하러 가는 길은 새벽이라 늘 피곤한데 첫 목적지인 약국에서 늘 승려님들이 도착하면 마스크를 쓰고 나와 공양을 주시는 약사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다음 목적지인 음식점에 가서 공양을 받기 위해 약 100미터를 승려님 뒤를 쫓아 걸어가다보면 주위의 움직임에 잠이 깨고 내가 승려님들과 함께 있구나, 그러니 몸조심을 하고 행동을 더 조심해야지하고 생각하게된다. 원래 나는 되게 터벅터벅 걸으며 팔을 휘젓는 사람인데… 늘 손을 공손하게 하고 뭔가 걸음을 작게?하고 걷게된다. ㅎㅎㅎ

새벽 시장의 북적이는 기운에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공양에 감사인사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다시 시장 밖으로 나가 조금 걷다보면 아침 공양의 끝이다. 한국에서는 새벽 시장을 걸어다닐 때 공양을 받으시는 승려님들을 뵌 적은 없는데, 절에서 승려님들께 식사를 제공하는 행위를 본 적은 있다 - 우리나라도 이런 문화가 있는지 다음 한국에 갈 때 알아봐야겠다.

절로 다시 돌아와서 공양 음식을 정리하고, 절 근처를 빗자루로 쓸고 승려님들이 음식을 드신 후, 다른 사람들은 아침을 먹고, 나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은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담았다.

오늘은 페스코테리언인 우리가 먹을만한 음식이 꽤 많았는데, 게다가 친절하신 루앙 매의 자매분이 우리는 무엇인 지 알수가 없을 음식들도 “이건 어묵이니까 니네가 먹어도 되“라거나 ”이건 코코넛 디저트고 맛있으니 먹어!“라고 하시며 우리가 담은 저녁 콘테이너 위에 얹어주셨다. 특히 오늘 추천해주신 건, 스티키라이스로 만든 디저트로 안에 바나나로 만든 페이스트 같은 게 있는 디저트였는데 - 딱히 달지 않고 떡같은 맛이 나서 저녁을 먹고난 후 감사히 먹었다.


나는 아침 점심을 먹지 않고 저녁만 먹는 생활을 5년넘게 유지중인데, 절에 도착한 뒤로 점심 겸 저녁을 평소보다 훨씬 이른 3-4시쯤 먹는다. 저녁 찬팅 및 명상을 할 때 배가 부른 상태로 하고싶지 않고, 도시에서보다 훨씬 빨리 잠에 드는 절에서의 생활이기 때문에 3-4시에 저녁을 먹으면 저녁 찬팅 및 명상을 하는 6.30분 쯤 소화가 다 되고, 방으로 돌아와 씻고 나면 8시반-9시쯤 더부룩 함 없이 잠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을 먹으며 에이프릴 승려님께 왜 승려님들은 정오가 되기 전에만 먹는지 여쭈어보았는데, 승려님은 그는 부처님이 “그게 충분하다”라고 말씀하셨기때문이라 해주셨다. 승려님은 승려의 생활은 주로 앉아서 혹은 천천히 걸으며 명상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좌식생활이 주가 되기 때문에 세 끼는 과하고 또한 너무 많이 먹으면 정신이 흐트러지고 졸리기 때문에 부처님이 이렇게 가르치셨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게 왜 아침, 점심 대신 저녁을 먹는 걸 선택했냐고 물어보셔서 나는 아침, 점심을 먹으면 승려님의 말처럼 나 역시 정신이 흐트러짐을 느껴서 - 밥을 먹고 나서, 저녁 이후 편히 누워서 쉬도 되는 저녁을 먹기로 선택했다고 말씀드렸다.

에이프릴 승려님은 방콕에서 온 분인데, 아름답지만 정신없고 쉴틈없이 돌아가는 그 도시에서… 주말 새벽 6시에 열리는 시장이 가장 큰 이벤트인 반 라이로, 그리고 그 곳 절에서 승려의 삶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서 그런지, 그를 그려보니 승려님의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헌신과 열정이 느껴져서 혼자 감동받은 마음으로 망고를 자르는 에이프릴 승려님 옆에서 실실 웃었다. 아름다운 승려님들. 나는 원래 늘 웃는 상이기 때문에 승려님은 개의치도 않으셨다. ㅎㅎㅎ


아침활동을 하고, 오늘은 자원봉사자들이 세탁기를 쓸 수 있는 날이었지만 나는 그대신 방에서 손빨래로 해야할 빨래를 하고 날씨가 좋기를 바라며 빨래를 널었다. 그리고 최근 읽기 시작한 책을 누워서 집중해서 읽다가… 나도 모르게 낮잠에 들어,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아마도 내 몸에게 낮잠이 정말 필요했나보다.

절의 생활은, 아침에 청소를 하느냐/공양을 가느냐를 제외하고는 사실 스케쥴표를 따라하는 매일의 연속인 것 같다. 아무리 바쁜 월, 수요일이라도 스스로 하루를
돌아보고 생각할 시간이 많이 있는게 절 생활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절에 온 지 10일이 지나서야 겨우 마음의 평화를 찾게된, 내가 겪고 있는 한 문제가 있다. 절에 오기 거의 직전,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관계에 큰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고 이를 듣고나서 멀리 떨어져서 살지만 가슴으로는 항상 가까이 있는 가족들의 생각에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었다. 누군가는 상처받지 않을지, 건강에는 문제가 없을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를 생각하며 답이 없는 문제를 혼자 생각하며 고민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마치 눈을 눈밭에 굴리는 것처럼 그 생각은 커졌고 예전에 있던 문제들까지 내 스스로 끌어당겨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내 머리속에서는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 루앙 매와의 다마토크가 끝나고 어제의 잠못이루는 밤, 그리고 오늘 아침 명상이 끝난 후 -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 그리고 지나간 것에 대한 관점으로 현재를 문제를 바라보는 것조차 내가 가지고 있는 “나쁜” 인식일수도 있다는 점. 미래의 것은 아직 오지않는 것, 이 역시 지나간 것에 대한 괸점으로 내가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내며 스스로를 고통속에 살게한다는 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서 살도록 mindfulness를 더 수련해야한다는 것임을 “알고”있는 것만이 아닌 진심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마음이 정말 편해져서 오늘은 가족에게 연락도 하고, 스스로도 마음 정리가 되었던 것 같다. 이 문제 말고도 절에 있는 동안 스스로와 정리하고싶은 문제들을 천천히 마음을 수련하며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야겠다.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책을 읽다보니 어느덧 저녁 찬팅 및 명상을 하러 갈 시간! 마침 비가 올 것 같이 센 바람이 불어서, 조금 일찍 법당으로 향해 자리를 잡았다. 나보다 미리 와서 기다리는 귀여운 고양이가 다가오지만 만져줄 수 없어서 미안했다. 승려님들과 팀, 사라의 도착 후 6시반에 저녁 찬팅을 시작해 찬팅이 끝나면 저녁 명상으로 이어진다. 오늘 저녁 명상에서는 조금 생각이 뜬구름처럼 머리 위를 맴돌았던 것 같다. 한 달이라는 시간. 어찌 보면, 절에서 한 달이나 지내니 길게 느껴지지만 - 이 곳에서 “Mindfulness”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그를 완벽히 느끼며 명상을 한 번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래서 이를 실생활 매일에도 느낄 수 있다면 하는 게 나의 목표다.

저녁 찬팅 및 명상이 끝나고 승려님이 내일은 다마 토크 대신 수타를 배운다고 말씀해주셨다. 안그래도 오늘 오후에 불교와 여성 관련 책을 읽으며 불교의 가르침은 직접 느끼는 것이다…라는 루앙 매의 말을 생각하다가, 나는 이야기를 통해서 배우는 게 가장 잘 맞아서, 불교 경전인 수타를 조금 더 읽어보고 직접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수타를 통해 더 배울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 글을 쓰기 시작하며 오늘은 딱히 한 게 없는데 뭘쓸까?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밖에서보다 다른 사람 및 팀과의 대화가 적어서 그런걸까? 내 하루에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들어있는지 나조차 몰랐다. 지난 10년간 서서히 극 내향으로 성향이 아주 많이 변했는데 사이버 외향인인가 ㅎㅎㅎ 오늘 밤은 푹 자고 내일 개운하게 일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