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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워크어웨이] 구글 맵에도 없는 절에서 보내는 4주간의 나와의 여행 - 14일째, 2025년 5월 29일.

발렌타인의 배낭여행기 2025. 5. 29. 22:56
[태국 워크어웨이]
구글 맵에도 없는 절에서 보내는 4주간의 나와의 여행
14일째, 2025년 5월 29일

이 곳에 온지 약 일주일이 지났을 때, 팀이 내게 했던 말이 있다. ”성인이 되고난 후 살면서, 지금처럼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던 시간이 있었을까? 아마 지금이 처음인 것 같아.“라고. 성인이 되고, 대학으로 가며 독립하면서 공부를 할 때도, 아일랜드로 어학연수를 다녀왔을 때에도, 대학을 졸업한 후 첫 직장을 가지게 되었을때도, 그리고 그 직장을 관두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로 잠시 쉬러가자고 결정을 했을 때도, 영주권을 따고 호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갈 때에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언제나 일이나 공부를 생각해야했고, 여행을 할 때에도 내 자신에게 집중하기보다는 그 주위의 풍경에, 문화에 집중했기때문에 ”나“에게 이렇게 집중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내게 주어진 것은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소정의 금액을 내고, 최소한의 노동의 댓가로 - 나는 스스로와 대화하고, 나를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을 매일 더 깊게 가지고 있음에 새로이 감사하는 하루다.


어제 밤, 피곤한 몸을 뉘였지만 아무래도 커피를 평소의 2-3배로 마셔서 그런지 바로 잠들지는 못했다. 사실 절에 오게되면 잠을 아-주 잘 잘거라 생각했는데, 코끼리보호소에 있을 때나 방콕에서나 최소 하루 만보, 최대 삼만보까지 걷다가 육체적 활동이 그리 많지않은 절에 지내서 그런지 생각보다 밤에 쉽게 잠들지는 못하는 것 같다. 보통 밤에 4-5시간 자고, 낮잠으로 한시간 정도를 자는 나로서는 기록적일 정도의 (평균 수면시간 9-10시간…) 짧은 잠을 자고있다.

여전히 힘든 아침 기상.
일어나서 이 종소리와 알람소리는 내게 불교적인 “느낌”으로 봤을때 “좋은가, 좋지않은가, 혹은 좋지도 좋지않지도 않은가”…하는 생각을 했는데, 좋지않았다. ㅎㅎㅎ 그럴 생각을 할 틈도 잠시, 일어나 준비를 하고 손전등을 비춰보며 법당으로 아침 명상을 향해 도착했다. 오늘, 아침명상에 늘 1등으로 도착해계신 낸 수티에게 나는 아침명상이 가장 집중하기가 힘들다고 하자 낸 수티는 자신은 아침명상이 가장 쉽다고 했다. 일어났을 때 머리가 가장 가볍고, 일어나 걸어서 법당으로 와서 앉아, 그 현재에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뭔가 머리속에서 아…! 하는 깨우침을 느끼고, 내일부터는 아침 명상에 갔을 때 자리를 잡고, 호흡을 가다듬고, 이제 하자. 라는 마음으로 아침명상을 대해보기로 했다.

오늘은 사라의 비파사나/침묵 명상이 끝나는 날! 아직 어리고 고등학교를 갓 마친 사라는 5일간의 침묵이 끝나고 말 그대로 “입이 트였다”. 오늘 아침부터 시작해, 거의 저녁 찬팅 및 명상을 가기 전까지 사라를 보면 그저 끄덕임으로 지나가는 순간 없이 하루종일 사라의 수다를 들어주는 봇이 된 것 같았다. 나와 팀은 오늘 둘 다 사라의 끝도없는 수다를 들어주느라… 조금 지치기는 했지만… 어린 사라가 5일간의 침묵끝에 입이 터진 것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둘만 남겨진 짧은 순간에는 둘다 피곤함에 침묵을 행했다. ㅎㅎㅎ

그렇기 때문에, 아침 명상이 끝난 이후 오늘 사라가 공양을 받으러 나는 절에 청소를 위해 남았다. 절의 2층인 절 공간은, 이제는 대부분 승려님들이 법당에서 기도를 드리기 때문에 거의 쓰여지지않는 공간으로 아주 오래된 지붕이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밤에는 엄청난 개코들과 쥐들이 파티를 벌이는 곳… 그래서 매일 청소를 하지않으면 개코의 배설물과 지붕에서 떨어지는 페인트들이 쌓이기 때문에 거의 쓰여지지않아도 매일 청소를 해야한다. 지금까지 본 중 가장 더러워 보이는… 2층이었지만 승려님들의 도움으로 1층 청소가 일찍 끝나, 2층을 천천히 청소할 수 있었다. 원래 나는 정말 청소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게 깨끗해지고 이를 부처님께 그리고 절에 보답하는 마음이라 생각하면 아침 청소는 쉬워졌다.


청소를 마치고, 돌아온 팀과 사라와 함께 공양음식을 풀고 근처에 있는 큰 나뭇가지들을 줍고 아침을 먹기 전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 큰 자동차 두 대에서 한 차에서는 갈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다른 차에서는 연보라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내렸다. 낸 에이프릴이 그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하는 동안 나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몰랐고, 곧 그들이
건네주는 팟타이, 간식, 콜라 (!) 등을 받아 공양음식과 함께 테이블에 올렸다.

낸 에이프릴은 눈이 벌게진채로 우리에게 그들이 자신의 가족이라고 소개했다. 낸 에이프릴의 가족 모두는 언제나 불교에 큰 믿음이 있었는데, 특히 낸 에이프릴이 명상에 눈을 뜨고 이 곳에 귀의하고 난 뒤에는 가족과 친구들 모두 귀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도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귀의 준비자 Preceptees”라는 것을 의미하고 그 색깔은 그들이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지(?)를 의미한다고 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절에서 한시간 넘게 있는 곳에서 지내는데, 그 말은 이들이 새벽 4-5시 이른 시간 일어나 낸 에이프릴을 위해 음식을 싸고 운전을 해 이 먼곳까지 왔다는 말… 그들의 정성에 감동받은 에이프릴은, 우리에게 좋은 가족과 친구가 있어 자신의 종교적 여행이 때로는 외롭더라도, 큰 힘이 되어준다고 말해주었다. 늘 씩씩하고 웃는 낸 에이프릴이 감동받아 우는 모습을 보는 나 역시 찡했고, 한국에 10년만에 방문했을 때 가족들이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던 게 생각나기도 했다.


저녁 도시락으로 낸 에이프릴 가족들이 감사히 가져다준 음식들을 쌌다. 나와 팀, 사라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는 처음으로 이 곳 지역의 학교에 영어를 가르치러 오후에 가는 일을 맡았다. 사라는 우리보다 이 곳에 오래있었지만 학교방학이었기때문에 영어를 가르치지않았고, 지난 주는 레슨이 취소되어 방학이 끝난 첫번째 레슨이 오늘이었다. 우리는 절의 태국 봉사자(번역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절에서 먹고 지내며 봉사를 하는 불자이다.)인 “룽”의 도움을 받았고 룽은 우리에게 오늘 가르칠 아이들은 10-11세 사이이며, 영어를 어느정도 하는 수준이라고 알려주었고 오늘은 집의 방/가구들을 영어로 알려주는게 좋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마치 90년대로 돌아간듯한 절의 컴퓨터와 프린터로 우리는 머리를 맞대어 오늘 아이들과 할 액티비티를 프린트하고, 오후 1시에 룽과 함께 학교로 가기위해 만나기로 했다. 사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내게는 세상 가장 힘든 일… 친구의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아이들을 보는 건 좋지만, 집중력이 산만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내게는 정-말 힘들기 때문에, 혼자 가르치는게 아닌 팀과 사라와 하게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낮잠을 잔 후, 약 20분간 밴으로 달려 도착한 학교! 처음에는 약 5명의 학생만 있어서 오? 괜찮겠는데? 라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이 갑자기 많이 들어오기 시작해 우리는 30명의 학생을 가르치게 되었다. ㅎㅎㅎ 우리의 레슨 플랜은 대충 인사 - 각자 소개 - 아이들이 자기 소개하기 - 프린트를 보며 단어 공부 및 대화 - 시간이 남는다면 게임, 이었는데 우리들의 생각보다 아이들의 영어 수준이 높지 않아서 준비한 프린트 중 하나의 프린트는 사용할 수가 없어, 그 곳에서 감사한 챗지피티로 검색을 해가며 어찌어찌, 한시간 반의 레슨이 끝났다. 더 자세히 쓰고싶지만, 약 40분이 지난 뒤에는 우리 중 가르치는 걸 가장 즐거워 하는! 사라가 자신감을 얻어 레슨을 주도했고 그 뒤 잠시 쉬고나서는 학생들이 집중력을 잃어 반복학습을 위주로 했다. 룽이 태국어로 내내 번역을 해주어서 정말 다행이었던 레슨… 나중에 사라는 오늘 레슨이 끝나고, 다음주의 레슨이 기대되고 이제 학생들을 알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해야할 지 대충 감이 잡힌다고 했고 나와 팀은 - 너라도 그래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말로 우리의 느낌을 대신했다. ㅎㅎㅎ

내일 역시 레슨을 하러 같은 학교에 가는데, 어린 학생들이고 알파벳도 모르는 6-8세의 학생들이기 때문에 내일은 알파벳을 가르치기로 해 아마 조금 더? 쉬울 것 같다. 워크어웨이를 하면서, 하고싶던 일을 말고도 정말 다양한 일을 하며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에대해 알게되는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나 호주에서도 과외의 경험이 있던 나는 가르치는 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승려님들께 영어를 가르치는 것처럼 성인이나 청소년에게 가르치는 것은 괜찮지만 - 아이들에게 무얼 가르치는 것에는 소질이 없고, 내 스스로의 에너지가 빨림을 느낀다. 또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그닥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호스텔에서 일하거나 가이드로 일하는 건 정말 즐거웠고 가드닝이나 무거운 걸 옮기는 것 역시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몸이 힘들기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비하면 나는 그런 일을 선호한다. 평소에 접하지 못할 다양한 일을 해가며 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알아가는 것 또한, 워크어웨이의 아주 큰 장점인 것 같다.


절에 도착하기 전, 룽이 약국에 들리는 겸사겸사 나도 면역력을 위한 프로폴리스와 염증을 위한 이부프로펜을 산 뒤 다시 절로 도착했다. 이른 저녁을 먹는데 낸 에이프릴의 가족이 가져다주신 속세의 맛이 나는 팟타이가 어찌나 맛있던지…! ㅎㅎㅎ 낸 에이프릴께 다시 감사하고, 정리를 한 뒤 숙소에 돌아와 나의 루틴이라 할 수 있는 책읽기 - 약간의(약 10분…?ㅎ) 운동을 하고 다시 절의 공용공간으로 돌아가 내일 아침 시장 근처 큰 쓰레기장에 버릴 쓰레기를 정리하고, 일찍 저녁 찬팅 및 명상을 향해 법당으로 향했다.

오늘의 찬팅 및 명상 시간동안 - 내가 절에 온 이후 배우게 된 것들(주로 불교 개념들)에 대해 생각하며, 앞으로의 2-3일간 이들을 더 복습하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내게 물어보면 “대충”은 알지만 아직 자세히 알기는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매일 배운 점을 블로그로 정리해두었으니 이를 훑어보며 개념들에 익숙해지고, 내가 비파사나/침묵 명상을 하게될 때 - 이 개념들을 보지않고도 그 개념들에 집중해 Mindfulness를 연습하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을 하며 좋은 명상을 한 기념으로, 오늘 밤 조금 이에 대해 읽다가 잠들어야겠다. “절”과는 조금 거리가 먼 것 같으면서도, 절이 커뮤니티에 보답하는 그 활동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수있어 감사했던 하루가 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