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배낭여행 - 작은 도시 이포
4. 패트릭과 우리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안녕 이포. - 2025년 2월의 기록
패트릭의 자동차는 정말 오래되었고 패트릭은 노안 및 녹내장으로 인해 멀리 운전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오랑 아슬리들이 사는 곳은 대부분 정글이라, 패트릭은 근처가 아닐 경우에는 패트릭과 물품들을 운전해 줄 사람들이 있어야만 오랑 아슬리들에게 방문이 가능했고 그들과 (가능한 경우) 와츠앱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언제 다음 방문을 할 지들에 대해 대화를 한다고 했다. 우리는 패트릭을 만난 이후 다음 주, 약 5번 정도 패트릭이 근처에 갈 때 혹은 패트릭을 도와주는 다른 사람이 있을 때 패트릭과 동행해 오랑 아슬리들을 만났다.


패트릭의 봉사, 아니 선행은 시작했을 때에는 패트릭이 모든 것을 다 했고 모든 물품을 사들었지만 현재는 많은 다른 손길이 패트릭과 이포의 오랑 아슬리들을 도와주고 있다. 패트릭이 오랑 아슬리와 함께한 시간이 지나가고 패트릭이 도와주는 오랑 아슬리들의 수가 늘어나며 패트릭 역시 이포에 사는 '그' 사람으로 유명해졌다고 하고 또한 패트릭을 도와주려는 나쁜 손길도 있었다. 패트릭을 돕겠다는 명목하에 많은 사람들 및 종교인들이 그의 이름을 팔아 고펀드미나 아니면 다른 기부금을 모았었다고 하는데, 패트릭은 단 한번도 이런 돈들을 만져본 적이 없다고 하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상처를 받은 패트릭은 그 이후에는 절대 현금/이체는 받지않고 주위 아는 사람들이 택배로 부쳐주는 음식들 (사람들이 마트로 주문을 하면 패트릭이 가서 픽업을 하거나 패트릭의 집으로 배달이 온다) 혹은 패트릭의 이웃/친구/절 단체에서 주는 '물품'들만 받는다고 한다.
패트릭은 자신의 선행으로 시작한 일에 다른 사람들 역시 오랑 아슬리들의 권리에 관심을 가지는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있기 때문에, 받은 물품들이 오랑 아슬리들에 패트릭의 손으로 직접 가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을 찍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해서, 우리가 패트릭과 갔을 때에도 '사진을 제대로 찍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과 그 날의 '일기'를 패트릭은 와츠앱으로 자신의 선행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매일 보내주는데, 대부분 절의 스님들이 많지만 패트릭은 자신의 말을 듣지않는 정치인들에게도 무조건 보낸다고 한다. 갱스터 패트릭.
패트릭의 집은 조의 집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 그리고 패트릭의 아주 오래된 자동차를 타고 약 15분 정도 가면 라임스톤 마이닝이 한창인 곳이 있다. 그 채굴하는 먼지가득한 곳 바로 앞에 우리가 쿼리 아이들 'Quarry kids'라고 부르는 아이들 세 명, 갓 태어난 아기 한 명, 그리고 그들의 오빠, 엄마, 외할머니가 살고있다. 원래 이 채굴장 바로 앞에 많은 오랑 아슬리들이 살고있었으나 채굴로 인해 근처에서 물을 얻기도 힘들어지자 정글로들 많은 오랑 아슬리들이 밀려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사를 갈 곳이 없는 쿼리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은... 그들만이 이 채굴장 바로 앞에, 이렇게 지내고 있다. 채굴장을 뒤로 해 먼지가 가득하고, 채굴장에서 패트릭이 겨우 빌려온 전기로 아이들은 저녁에 생활한다.

마이닝 회사는 아직 아이들과 가족들을 쫓아내지는 않았지만 아마 마이닝이 길어진다면 ... 언젠가는 아이들이 이 곳에서도 쫓겨나 알 수 없는 곳으로 가야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 사는 쿼리 아이들, 그들의 유일한 수자원은 비올때 고이는 웅덩이. 이 웅덩이에서 아이들은 목욕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음식도 해먹어야하는데 오랑 아슬리들은 교육의 부족으로 위생관념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패트릭은 시간이 날 때마다 최소 이틀에 한 번 웬만하면 매일매일 자신의 집에서 물을 몇 리터씩 길어와 아이들과 가족들이 깨끗한 물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근처 베이커리에서 남은 빵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직접 참치캔/오일/쌀 등등 가족들의 식량도 가져다준다.
오랑 아슬리 빌리지에서 사는 경우, 가족이 많기 때문에 정부에서 도와주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패트릭이 아니라면 이 아이들과 가족들은 깨끗한 물, 오일, 음식에 접근이 불가능하다...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은 내게 의심이 가득한 눈빛을 하고 인사도 하지 않았지만, 빵을 줄까? 안줄까? 하는 작은 게임을 5분정도 하고 난 뒤 ... 떠나는 우리의 자동차 뒤로 아이들은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가난과 정부의 무관심 속에 살고있는 쿼리 아이들의 맑은 미소가 가슴에 남아서 팀과 함께 아이들이 '생활'만 하지 않고 그림도 그릴 수 있도록 패트릭을 통해 작은 선물을 주었는데 쿼리 아이들은 불장난 하는 걸 좋아한다하는데 이것도 불태웠으려나 ㅎㅎ 최근, 패트릭의 노트에서 쿼리 아이들 중 가장 큰 아이가 학교가 채굴장에서 너무 멀어서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다시 가게되었다는 글을 읽고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사실 호주에서 하는 일이 대부분 노인복지와 관련이 있던 일이고 내 스스로 아이들을 가지는 것에 대한 계획이 없어서 그런지 아동복지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패트릭을 만남으로서 모두에게 공평하고 접근이 쉬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에 대해 온 몸으로 느꼈다.


패트릭과 함께 다른 오랑 아슬리 빌리지들을 다녔는데 그 중 한 빌리지에서 패트릭은 파파야/바나나 등 오랑 아슬리들이 정글에서 채집한 과일들을 현금으로 구매했다. 이 빌리지에서 젊은 여성들이 버려지는 플라스틱 껍질로 가방을 만들고 패트릭은 이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 해리포터 카페 앞에 오랑 아슬리들과 패트릭이 함께 이 가방들을 팔아보려했는데 가방을 사고 돈으로 교환하는 대신 오랑 아슬리들에게 마치 적선하듯 현금만 주는 모습에 오랑 아슬리들이 많이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후 시티에 가는 것을 꺼려하는 오랑 아슬리들을 위해, 패트릭은 과일을 오랑 아슬리들에게 사고 그 대신 자신을 도와주는 이웃/친구들에게 나누어주거나 먹을 수 없는 과일들은 길에 버려진 개들을 위해 요리할 때 사용한다고 한다. 물품을 나누어주며 선행만 베푸는 게 아닌, 자신이 가고 나서... 어떻게 오랑 아슬리들이 패트릭 없이 자립성을 키워야 하는지도 생각하는 패트릭에 다시 한 번 감명받았었다.



이외에도, 우리는 이포에서 약 1시간 떨어진 오랑 아슬리들만을 케어해주는 병원에 가 갓 아이를 낳은 산모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기도하고 패트릭의 친구가 발전기를 설치해주어 전기가 없이 살던 8년을 지나, 전기를 가지게 된 빌리지 등 많은 곳에 패트릭과 함께 다녀왔다.
패트릭과 함께한 마지막 날, 우리는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는 눈을 선물해준 패트릭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 저녁 대접을 초대했지만 단번에 거절한 패트릭은 그 대신 우리를 오랑 아슬리들의 병원에 데려가고싶다고 했다. 이 자체가 패트릭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패트릭과 함께 한 시간을 나는 천사의 삶에 잠시 방문했다, 고 말하고싶다. 패트릭을 만난 순간부터 패트릭과 대화를 자주 하는 지금까지 패트릭의 지난 40년, 특히 30년은 자신을 뒤로하고 이포 근처의 오랑 아슬리들만을 위한 따뜻한 삶이라는 것을 늘 느낄 수 있다.
그가 찍은 쿼리 아이들의 사진에는 늘 사랑이 담겨져있고 자신의 자동차를 꽉 채워 오랑 아슬리들에게 나누어주어도 더 가지고 갔어야하는데- 라고 말하는 패트릭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아직도 나는 패트릭과 지낸 이 짧은 시간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패트릭을 만나고 패트릭이라는 사람을 나의 평생 친구로 둠으로서 내 인생의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무엇인지는 아직은 뚜렷하지 않지만... 언젠가 나도 알 수 있겠지? 조금만 자신에게 시간이 더 있었다면 오랑 아슬리들을 위한 고아원을 집 뒷마당에 짓고싶다는 패트릭, 언젠가 자신이 갈 날이 오면 무덤도 필요없고 오랑 아슬리들이 있는 정글로 뿌려달라는 패트릭. 만일 말레이시아에 다시 가게 된다면 더 많은 시간을 그와 보내며 나의 별 것 아닌 도움도 감사해하고 웃어주는 그들과도 조금 더 오래 지내보고 싶다.

작은 도시 이포, 우리의 첫 워크어웨이 이포는 생각지도 못했던 패트릭과의 만남으로..
잊혀질 수 없는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