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말레이시아

4-10. 말레이시아 2.5달 배낭여행 ; 작은 도시 이포 3. 패트릭을 만나다. - 2025년 2월의 기록

발렌타인의 배낭여행기 2025. 3. 26. 17:15
말레이시아 배낭여행 - 작은 도시 이포
3. 패트릭을 만나다. - 2025년 2월의 기록

 

말레이시아에서 이포를 떠난 이후 몸이 좋지않아 이제야 이포의 마지막 이야기를 쓰게되었다.

 

이포에서 워크어웨이를 한 첫 주의 마지막, 금요일 즈음에 조의 남동생인 패트릭이 우리를 조의 집으로 방문했다. 남루한 옷차림의 패트릭은 자신을 조의 남동생이라고 소개하며, 우리와 조가 먹을 빵과 파파야를 가져다주었다. 패트릭은 우리가 조의 집에서 지내고 있는 걸 미리 알았다면 다른 과일 및 음식들도 미리 가져다주었을거라고 아쉬워하며 자신은 말레이시아의 원주민인 오랑 아슬리 'Orang Asli'들에 먹을 것/마실 것/입을 것 등을 가져다주는 활동을 거의 매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오전 일을 하고있었고 패트릭도 급히 갈 곳이 있는데, 혹시 우리에게 나중에 일이 끝난 이후 근처 절에 점심을 먹으러 갈지 물어보았고 우리는 흔쾌히 승낙했다.

 

우리는 패트릭을 만나기 전에는, 부끄럽게도 말레이시아에도 원주민이 있는지 몰랐었다. 패트릭에게 배우고 우리가 검색한 바로는 말레이시아 원주민인 오랑 아슬리들의 땅에 가장 먼저 온 사람들은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자바에서 온 현재의 '말레이시안'이라고 알려진 사람들. 물론 오랑 아슬리들 중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받아들여 시티로 이주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전 글들처럼, 홍콩 및 중국에서 이주해온 수많은 말레이 중국인, 힌두교를 가지고 있는 인디안, 다른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이주해온 이민자들이 말레이시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오랑 아슬리는 전체 인구의 0.7%정도만 차지한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말레이시아에서 사바주 Sabah를 제외하고는 (이는 큰 문제가 된 이후에서야 사바주에서도 고쳐진 것) 오랑 아슬리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고 하며,특히 그들이 살고있는 '땅'에 대한 권리가 없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문제이다. 말레이시아는 팜 오일 플랜테이션 Palm Oil plantation이 큰 수입원이고 이포는 라임스톤 마이닝/채굴 Limestone mining이 경제를 이끄는데, 오랑 아슬리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 가장 먼저 살고있던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대한 권리가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돈을 위해 이들이 살고있는 지역을 플랜테이션 회사나 마이닝 회사에 팔아버리고... 이들은 점점 더 정글로 가게된다.

그 예로, 우리는 한 오랑 아슬리 빌리지에 가게 되었는데 정부가 몇 년전 오랑 아슬리들을 위해 지어준 현대적으로 보이는 집들이 있었다. 패트릭에게 왜 오랑 아슬리들이 이 곳에 지내지 않고 더 깊숙한 정글에서 지내냐고 물어보자, 패트릭이 정부가 집을 지었고 오랑 아슬리들은 이 집에서 정착하고 지냈으나 이 땅은 오랑 아슬리들의 것이 아니었고 정부가 결국 이 땅을 팜 오일 플랜테이션 회사에 팔아버렸기 때문에 오랑 아슬리들이 살고있던 집에서 쫓겨나 정글로 가게 됬다는 것이었다! 정부가 오랑 아슬리들을 위해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땅에 대한 권리가 없이는 그들의 미래는 막막할 뿐이다. 

 

그 결과로 오랑 아슬리들은 학교에서 멀어지게 되고 교육이 부족해 직장을 구하는데도 힘들어지고, 가난은 되풀이되는 악순환은 계속된다. 말레이시아의 사바나 다른 지역에 가면 오랑 아슬리들이 사는 빌리지를 관광으로 만들어 둔 곳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포 지역에는 그런 곳도 없어 수입원도 없었고 말레이/말레이 중국인/인도인들 모두에게 인종차별 아닌 인종차별을 당하는 그들은 직장을 구하는 것도 정말 힘들다고 한다. 


절에서도 이미 유명인사인 패트릭. 패트릭은 춘절기간 동안 절에서는 무료 음식을 제공하고, 2시가 되면 패트릭은 절로 가서 남는 음식들을 싸서 근처 자동차 세차장에서 일하는 오랑 아슬리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했다. 점심을 먹으며 패트릭은 우리에게 자신의 짧지만 감명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님들이 빵울 굽는 오래된 오븐.

 

패트릭 역시 조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 말레이시아로 이주한 많은 홍콩 사람들처럼 약 40년 전 영국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고 한다. 말레이시아로 돌아온 이후, 자신의 조카들을 데리고 이포 근처에 땅을 보러간 그는 그 일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꿀 지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패트릭은 땅을 사는 대신, 그 지역에서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 원주민들인 오랑 아슬리들을 만났고 이포의 지속적이지 못한 발전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정글 더 깊숙한 곳으로 밀려나고있는 그들을 위해 물, 식량 등을 직접 구매해 자신의 자동차로 그들에게 가져다주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가 아프셨을 때에는 간병을 했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약 30년간 패트릭은 집안 가업을 잇거나 돈/명예를 쫓는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오랑 아슬리와의 관계를 더 넓혀가며 더 많은 오랑 아슬리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돈을 사용하고, 혹은 주위에서 기부를 하는 이들에게 현금/돈은 절대 받지않고 물건으로 기부를 받아가고 이를 여기저기 흩어진 오랑 아슬리들에게 나누어주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패트릭은 그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 JCI라는 봉사단체에서도 자신을 도와주러 오는데 우리에게도 혹시 와서 말레이시아의 '다른 면'을 보고싶냐고 물어보았고 사회정의에 관심이 많은 우리는 당연히 이를 수락했다. 패트릭과의 만남은 아주 짧았지만 강렬했고, 호주에서도 호주 원주민들의 권리에 관심이 많은 우리는 그 다음날에 대한 기대로 잠에 들었다.


그 다음 날 아침 조의 집에서 10분 걸어 도착한 패트릭의 집에는 이미 JCI라는 봉사단체의 20-30대 다른 사람들이 와서 패트릭이 미리 새벽같이 준비한 물건들을 싣고있었고, 우리 역시 얼떨떨하게 그들과 인사를 하며 패트릭의 지시에 따라 물품들을 실어날랐다. 봉사단체에서 자차를 이용해 운전을 해주는 그들의 따뜻함으로 나와 팀은 오랑 아슬리들의 지역에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이 날은 특히, 유방암 검진을 해주는 의료단체의 봉사 역시 행해졌고 패트릭은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귀소한 자원들을 최대한 공평하게 나누어주기위해서 오랑 아슬리들에게 줄을 세워가며 우리에게도 해야할 일들을 알려주었다.

패트릭이 새벽부터 혼자 준비한 50명이 넘는 오랑 아슬리들을 위한 물품.

 

물품들을 나누어줄 때, 팀은 쌀을 나누어주고 나는 기저귀를 맞는 사이즈로 나누어주는 역할을 해 패트릭의 바로 옆에 있었다. 패트릭은 50명이 넘는 오랑 아슬리 개인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최근에 가족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고있었고 그들 역시 패트릭을 '삼촌'이라 부르며 패트릭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JCI도 몇 달에 한번 온다고 하고, 우리 역시 잠시 머무는 사람들인데 70살이 넘은 패트릭이 이 곳에 매 달 와서 이 많은 물품들을 스스로 준비하고, 나누어주는 일까지 한다는 사실에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졌고 이포에서의 남은 시간동안, 패트릭을 최대한 더 많이 도와주고싶어졌다. 

쌀을 나누어주는 팀.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한 일을 합쳐도 패트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날 역시 봉사단체와 함께 절에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 혹시 우리의 남은 시간 동안 조와 일하지 않는 오후에 패트릭이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가 같이 가도 되냐고 하는 우리의 물음에 패트릭은 흔쾌히 응했다. 그리고 패트릭은 우리에게 혹시 시티에 있는 카페에 가고싶냐고 했고, 더위에 커피 한 잔이 절실했던 우리는 당연히 패트릭을 따랐다. 패트릭의 앞마당이 기부할 물품들로 가득찬 집에서 여러 물병들을 채운 후 (?) 우리는 패트릭의 연식이 아주 오래된 자동차를 타고 시티로 향했다. 시티로 향하는 길 2인승 자동차, 패트릭의 옆자리에는 내가 앉고 팀은 트럭형 자동차의 뒷편에서 구워지고 있었다. 새벽 4시부터 오랑 아슬리들에게 줄 물건들을 준비하고, 큰 자동차 5개를 꽉 채운 물품을 50명이 넘는 오랑 아슬리에게 주었음에도.. 시티로 가는 내내 패트릭이 걱정한 건, 더 많이 준비할 걸 - 초콜렛 음료를 더 많이 살 걸 - 더 주지못한 미안한 마음 뿐이었고 그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큰 사랑에 나의 존재가 정말 작게 느껴졌다. 


패트릭이 향한 곳은 시티에서도 가장 유명한 레인인 컨큐바인 레인, Concubine Lane -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해리포터 카페! 이 카페는 해리포터 주제로 만들어진 카페로 이포에 도착하기 전에도 트립 어드바이저 등에서 유명했는데 패트릭은 이 카페가 있는 건물의 주인이었고 패트릭은 카페에 있는 자신의 식물들에 물을 주기위해 물병들을 채운 것이었다. 패트릭은 몇 십년 전, 다른 형제 자매 그 누구도 원치않는 이 건물을 물려받았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알맞는 사람이 비지니스를 오픈할 때까지 건물을 이 자리에 두었다가 몇 년 전, 해리포터 카페라는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커플과 뜻이 맞아 그들이 카페를 패트릭의 건물에 열었다고 한다.

 

우연히 카페를 방문한 다른 가족과 대화를 하던 중, 패트릭이 그 카페 건물의 주인이라는 걸 알게 난 이후 - 그 가족의 패트릭을 보는 눈빛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패트릭을 여러번 보았지만 그는 언제나 남루하고 소박한 옷차림에 오래된 자동차를 가지고 근처 절에서 밥을 먹거나, 채식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점심 및 저녁을 해결하는 간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패트릭이 하는 모든 행동은 선을 향해, 그리고 오랑 아슬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기 위한 목적만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이 가고 있는 건물에 문을 연 카페가 성공을 한 건 '카르마'라는, 자신이 하는대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그 말 자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