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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워크어웨이] 구글 맵에도 없는 절에서 보내는 4주간의 나와의 여행 - 이를 마치는 마지막 글.

발렌타인의 배낭여행기 2025. 6. 14. 23:02
[태국 워크어웨이]
구글 맵에도 없는 절에서 보내는 4주간의 나와의 여행
이를 마치는 마지막 글.
저번 주, 절에서의 마지막 영어 레슨 날

절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던 6월 13일. 절이 있는 곳인 반 라이 Ban Rai에서 방콕으로 가는 버스는 오전 7시, 10시 혹은 오후 2시가 있었는데 우리는 7시와 10시버스 중 고민하다가, 아침활동을 하면 다시 샤워도 해야하고 버스 안에서 몸이 찝찝할 것 같아 아침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아침 공양을 도운 뒤 바로 버스정류장으로 가게되는 오전 7시 버스를 선택했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남은 짐을 싸고, 마지막으로 남은 먼지들을 쓸고 짐을 밴에 실은 후 팀과 함께 마지막 아침 명상을 위해 법당으로 향했다. 법당에서 앉아서 하는 명상의 목적은 “집중 명상 concentration meditation”으로 오직 한 사물이나 생각에 집중을 하는 one pointedness meditation인데,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먼 내게 아침 일찍부터 집중 명상을 하는 것은 매일이 도전이었다. 어느 날은 나도 놀랄 만큼 잘 된 날도 있었지만, 다른 날들은 떠다니는 마음을 집중시키기 못하고 시간만 흘러보낸 날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연히 읽게된 책에서, 몸의 3가지 부분(코, 두 눈 사이 속으로 들어가면 있는 머리의 중심 그리고 단전)에서 할 수 있는 호흡법을 접하게 된 이후로 아침 명상의 질이 올라가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아침의 “깨끗하고 맑은” 정신을 느끼며 명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버스를 놓치지는 않을까, 방콕으로 가면 무얼 해야하나, 그리고 승려님들과 인사를 할 생각에 무거운 마음 때문인지 - 아침 명상에 쉬이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눈을 뜨고, 법당을 둘러보며 루앙 매, 낸 수티, 낸 폭, 낸 니챠, 낸 농, 낸 이레나, 낸 피노이, 그리고 곧 귀의할 파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이 내게 준 잊지못할 경험과 가르침들 그리고 웃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시 가라앉히고, 다시 남은 시간 동안 아침 명상을 하며 그 생각들에 집중했다.

낸 폭, 그리고 팀!
낸 피노이와 나

아침 명상이 끝나고, 오늘은 공양을 위해 시내로 가지 않는 낸 폭과 루앙 매에게 인사를 하는 길. 낸 폭은 나와 팀에게 직접 준비한 작은 선물을 건내주며 여느날과 다름없이 따뜻한 미소로 우리에게 작별을 고했고, 팀과 나는 낸 폭의 선물을 받고 그 미소를 보자마자 바로 눈시울이 붉어져 눈물을 참기에 바빴다. 루앙 매는 나와 팀에게 감사하며 따뜻하게 우리의 안녕을 기도해주셨다.


루앙 매와 낸 폭에 손을 흔들며 떠난 아침 공양길. 자스민이 운전을 하고, 나와 팀은 승려님들의 뒤에 차를 타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공양을 위해 반 라이 시내(?)로 향했다. 어느날과 다름 없이,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특별했던 마지막 공양.

마지막 공양을 하는 날

반 라이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반 라이는 부유하지않은 지역에 속함에도, 아침마다 승려님들께 직접 만든 음식들, 혹은 아침부터 산 음식들을 드리는 그 관대하고 따뜻하고 나누려는 마음을 공양을 하며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들리는 첫번째 스탑, 약국 문을 열기도 훨씬 전에 승려님들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약사님부터 - 매일 웃으며 그러나 천천히, 승려님들을 반겨주시는 아주머니 - 맛난 머핀과 디저트를 주시며 승려님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시는 빵집 부부내외분 - 승려님들께 믹스커피를 하나씩 나누어주시는 귀여운 카센터 가족과, 그 바로 옆 코너에서 매일 아침 엄청난 양의 음식과 간식을 주시는 가족까지. 그 분들이 승려님들을 대하는 것을 보며, 불교신자로서 승려님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예의바르고 공손한지를 초반에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음에 다행이었다.

공양의 끝, 마지막 스탑에서는 자스민이 공양을 받으러 승려님들과 떠나고 팀과 내가 밴 근처에서 승려님들과 자스민을 기다렸다. 승려님들이 돌아오셨을 때, 나와 팀이 어제 사둔 간식을 공양 그릇에 드리고 그룹활동을 하다 의도치 않게 우리에 의해 망가진 망치를 위한 현금을 드렸다. 아침 명상을 가기 전, 팀이 승려님들을 위힌 서프라이즈로 누텔라샌드위치도 만들어두었는데 좋아하셨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제는 버스를 타러가는 길.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승려님들께 감사인사를 표하는데, 낸 농이 내 손을 꽉 잡아주는 순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집착”을 버리라고 배웠던 만큼, 최대한 슬퍼하지않으려고 이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노력을 하고 있지만 - 연락을 함으로서,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근황을 쉽게 알 수 있는 다른 자원봉사자들이나 친구들과는 달리, 한 달동안 가까워진 승려님들이 잘 지내실지 또 어디에 계실지는 그냥 생각하고 상상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아직도 슬퍼질 때가 있다.

오직 바랄 수 있는 건, 나에게 그리고 팀에게 너무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승려님들이 부디 열반에 이 생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뿐. 앞으로 승려님들의 앞길에 열반으로 가는 길,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건강과 평온함만을 기원한다.


방콕에 도착한 것도 어제 오후의 일이다. 방콕 방문도 이번 여행에서만 벌써 네번째! 도시의 크기가 큰만큼 사람도 많고 할 것도 많은 도시라, 방콕에 도착하게되면 방콕에 압도되어서 평온한 마음 수행이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오늘 짜뚜짝 마켓에 가는 길, 그리고 마켓에서 수백명의 사람과 걸어가는 길, 또 돌아오는 길에도 내가 느꼈던 방콕 중 가장 고요하고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몇 번이나 팀에게 “오늘 왜이렇게 조용한거야?”라고 물어보았다. 사실 조용한 건 도시가 아닌 내 마음이었는데, 그걸 알아채는 데만도 하루가 걸렸다.

이 절에서 있었던 한 달의 시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절에 도착했을 때, 나는 불교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얕은 착각에 불과했다. 마하야나와 테라바다의 차이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고, 이전에 호주에서 몇 번 접했던 불교 명상 역시 철저히 '가이드된' 경험일 뿐, 스스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끌어가는 참된 명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돌이켜보면, 이 한 달은 나에게 있어 진정한 불교의 첫 문턱이었다.

이곳에 발을 들일 때, 사실 나는 아무런 기대도 품지 않았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이 절에 대해서도. 방에는 매트리스가 있을까, 선풍기라도 있을까, 내가 맡게 될 일은 어떤 것들일까, 활동적인 일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내가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함께 지내게 될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몇 명이나 있을까... 질문은 많았지만, 마음에는 기대가 아닌 조심스러운 비움만이 있었다.

그런 내게, 이 절은 예상치 못한 따뜻한 환대를 내어주었다. 혼자 쓸 수 있는 작은 화장실이 딸린, 조용하고 아름다운 헛에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고, 내가 던지는 서툰 질문들에도 늘 정성껏 답해주는 자비로운 승려님들이 계셨다. 내가 돕는 작은 일들에도 고마움을 전해주시고, 웃으며 진심 어린 인정을 건네주시던 그들의 모습은 내 마음을 천천히 열게 했다.

한 달간 보낸 나의 집과 나.
대나무 손질을 배우는 중
판단 커스타드 만들기

절에 오기 전, 나는 어찌보면 힘든 몇 년을 겪었던 나 자신에게 너무나 인색했었던 것 같다. 스스로가 미웠고, 계속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며 여유를 가질 시간을 주지 않았고 그 대신에 내가 가졌던 “쉼”의 시간을 자꾸만 뒤돌아보며 후회하면서, 그러지말았어야했다고 스스로를 몰아부쳤다. 이 곳에서 오온에 대해 배우게되면서 나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스스로와 보내는 시간이 편안해지며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되는 방법을 배운 것 또한 이 곳에서 받은 너무나 큰 선물이다. 또한, “어떻게 살아가야하나”라는 고민을 하는 나이와 시기인 나였는데 - 물질적인 것, 남들이 하는 것만을 쫓아가기보다는 팔정도를 삶의 기준으로 하는 삶을 살며, 남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고통을 끼치지않게 살고싶다고 마음 속 깊이 통찰하게된 것 역시, 이 절에서의 한 달이 내게 준 선물이다.  


이 한 달은 단지 자원봉사의 시간이 아니었다. 세심한 온기와 깊은 침묵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법을 배웠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불교의 문 앞에 조용히 앉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내가 스스로에게 준 가장 조용하고도 깊은 여정이었다. 이제 앞으로 내게 남은 선택지는, 이를 뒤로하고 예전과 같이 살것인가 - 혹은 이 배움과 함께 걸어갈 것인가. 나는 이 인생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앞으로도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해나가며 살아가려한다. 너무나도 감사하고 뜻깊었던 28일간의 시간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Sadhu Sadhu Sadhu.